우리 작은엄마는 16살에 시집오셔서 19살에 과부가 되었습니다.
작은집이지만 사촌들 셋이 다 나에게는 언니고 오빠들 이에요.
내가 큰집의 막내니까요.
그런데 작은엄마가 작은아버지 돌라가셨을때의 그 절망감과 슬픔은 친척들에게 아직도 회자될 정도로 심했나 봐요.
딸하나 아들 둘을 낳았는데 남편이 사망하고 얼마나 막막했을지
사람마다 다 다르겠지만 작은엄마는 자식을 위해서 평생을 바치신 분이세요.
재혼이나 남자는 생각도 안하시고
우리집과 근거리 살면서
큰집을 의지하면서 논농사 밭농사 지으시면 언니오빠들 모두 고등교육 시키시고
언니 시집가고 작은 아들은 객지에 나가살고
큰아들이 집에 남아서 대농이 되었는데 (도시의 중산층보다도 더 좋은 집에서 더 잘살아요)
이웃동네 아는 언니랑 연애를 해서 결혼도 전에 아들이 태어났어요.
혼자 산전수전 겪으면서 살아서 인지
우리 작은엄마에 고집은 누구도 못 꺽을 만큼 드센데
그 작은엄마가 아이까지 낳은 여자를 며누리로 못 받겠다고 하신거에요
그런데 오빠가 너무 그 언니를 좋아하고 있고
우리 부모님이 달래고 달래서 겨우 얻은 허락이
결혼식도 안 치러주고 혼인신고만 하고 와서 살라면 살아라 였어요.
그리고 신부가 들어오는 날을 잡았는데 음식하나도 할 생각을 안하고
그날 자신은 고추모종 심는 날이기 때문에 집에 있지도 않겠다고
오빠도 그날 고추모종 심어야 하니 집에 없을거라고 하시는거에요.
어쩌라고
급기야 우리 부모님이
미리 떡이며 이것 저것 시장봐 뒀다가 아무도 없는 작은집에서
우리집 식구들만 모여서 전도 부치고 잡채도 만들어서 신부를 받았어요.
신부는 한복을 입고 이웃 동네에서 걸어서 왔고
막 태어난 갓난 아기를 이웃집 할머니가 업고 오셨고요
우리 어머니가 나름 형식을 갖춘 잔치상 차려놓고
우리 부모님과 나랑 우리오빠 언니 모두 작은엄마 밭으로 가서
얼르고 달래서 작은엄마 모시고 작은집으로 왔어요.
그때까지 마당 한쪽에 서성이며 서 있는 새신부와 손주를 업고있는 노인에게
눈길한번 안주고 온몸에 흙탕물이 범벅으로 젖은 상태로 방 아랫목에 앉고
그제서야 신부가 절을 올리고, 절을 받으신 분이세요
그 작은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부고소식을 듣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가 떠나신 작은엄마에 명복을 빌면서 이 글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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